
항생제는 20세기 의학 발전의 상징이자 수많은 생명을 구한 기적의 약물이었으나, 현재는 그 오남용으로 인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세균들이 기존 약물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항생제 내성균, 즉 슈퍼박테리아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항생제 오남용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감기처럼 바이러스가 주원인인 질환에는 항생제가 전혀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나 의료진의 요구에 따라 불필요하게 처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은다. 많은 사람이 항생제 복용 중 증상이 조금 나아지면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데, 이는 세균이 완전히 박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약물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또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정확한 진단 없이 광범위한 세균에 작용하는 광범위 항생제를 쉽게 처방하는 관행도 내성균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오남용의 결과로 출현하는 항생제 내성균은 기존 항생제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워진다. 이는 단순한 감염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폐렴, 요로 감염, 패혈증 등 흔한 세균성 질환의 치료 성공률이 떨어지고 있으며, 내성균 치료를 위해서는 더 강력하고 값비싼 약물을 장기간 사용해야 하므로 사회적 의료 비용이 폭증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감염 위험이 높은 장기 이식이나 항암 치료와 같은 현대 의학의 주요 시술들조차 내성균 문제로 인해 큰 위협을 받게 된다.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은 의료계,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공동의 과제이다.
첫째, 의료기관은 항생제 사용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에서 항생제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항생제 스튜어드십(Stewardship)' 활동을 통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정확한 진단에 기반한 최소한의 항생제만을 정해진 기간 동안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교육도 필수적이다.
둘째, 정부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항생제 사용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과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내성균 발생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새로운 항생제나 내성균을 극복할 대체 치료제 개발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국민은 항생제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국민 스스로 감기 등 바이러스 질환에는 항생제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료진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항생제를 처방받았다면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의료진이 지시한 용량과 기간을 반드시 지켜 끝까지 복용해야 한다. 나아가 손 씻기, 기침 예절 등 기본적인 개인 위생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감염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항생제 오남용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 우리가 항생제를 아껴 쓰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노력이 미래 세대가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국가적, 개인적 차원에서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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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