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대리수술까지?... 천태만상 ‘불법 의료’ 증언 나왔다

▲ 사진제공=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제50주년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지난 12일 불법의료 고발 현장 좌담회를 진행했다. 좌담회에서는 외과계 PA 간호사와 중환자실 간호사가 참가해 직접 경험한 불법의료 사례를 증언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간호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의료기관에 만연한 불법의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며 좌담회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의사가 부족해 의사 업무를 하는 PA 간호사가 전국에 1만 명이 넘는다”며 “이들이 하고 있는 의사 업무는 명확히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의사 업무를 하는 간호사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일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환자들을 속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PA란 Physician Assistant의 준말로 진료보조(의사보조) 인력을 뜻한다. PA는 우리나라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병원에 존재하는 직역이다. 대개 간호사 위주로 구성되는 PA(응급구조사·임상병리사 등 간호사 외 PA도 존재)는 의사가 아니지만 처방, 각종 의무기록 작성을 비롯해 시술, 수술 등 의료법상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전국 26개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에서만 간호사 1,680여 명이 PA로 일하고 있으며, 26개 병원 중 PA 간호사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는 병원이 15.4% 달했고 절반 이상의 병원에서 50명 이상 99명 미만의 간호사가 PA로 일하고 있었다.

오선영 정책국장은 병원에서 가장 많이 벌어지는 5대 불법의료로 ▲대리 처방 ▲동의서·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 ▲대리 조제를 꼽았다.

의사 업무를 전담하는 PA 간호사 외에도 병동과 외래,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일반 간호사 역시 대리 처치와 시술, 처방 등 불법의료를 대부분 경험하고 있었다. PA 간호사는 ‘전체 근무시간 대비 의사 업무 비중’이 68%라고 답했는데, 일반 병동 간호사도 ‘근무 시간 중 37% 동안 의사 업무를 대리한다’고 답했다.

오 국장은 “PA와 간호사가 하는 의사 대리 업무는 정규 교육과정이나 자격조건을 갖춘 행위가 아니기에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은 물론, 의료사고 등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행위자(PA 및 간호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다”고 꼬집었다.


▲ 사진제공=보건의료노조

좌담회에 앞서 현직 간호사들의 증언 영상이 상영됐다. 전국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조합원들은 ‘불법의료를 하지 않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며 병원 현장에 불법의료가 일상처럼 이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영상 인터뷰에서 한 간호사는 “의사와 간호사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며 불법의료 지시를 거부했을 때 의사에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너 하나 자를 수 있어” 등과 같은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의사가 지시한 의사 대리 업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의적인 업무 반복 지시, 부서 이동, 업무 박탈 등 보복을 당했던 경험담이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면허 취소나 법정 소송까지 늘 염두에 두면서 일하고 있다”거나 “(불법의료로 인해) 환자가 혹시나 추후에 부작용을 겪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일한다”는 진술도 있었다.

현장 좌담회에는 PA 간호사 2명과 중환자실 간호사 2명이 신변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참가했다.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D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D씨가 재직중인 병원에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먼저 의사 아이디로 처방 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반면 인턴 의사, 전공의의 경우 처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결국 환자들 처방은 모두 간호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D 간호사는 동료 간호사가 의사의 ‘늘 주던대로 줘’라는 말을 듣고 고위험 약물을 처방했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렇듯 처방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의사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사가 해야 하는 처치와 의료기기 조작을 대신하다 문제가 생긴 사례도 증언됐다. D 간호사는 “불법 의료는 운전면허가 없는 아이에게 운전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법행위를 지시·조장하는 병원 사용자에게 정부가 패널티를 주는 등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외과 PA로 근무하는 A 간호사는 집도의가 바빠 수술실에 늦게 들어올 경우 집도의가 오기 전까지 대신 수술을 집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네가 거기 있으니 네가 하라’라고 지시해 충수돌기(맹장), 담낭, 위장 절제까지 하곤 했다”고 밝혔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B 간호사는 의사에게 “알아서 처방 낼 것을 강요받았다”며 “거부할 시 필요하지 않은 일들까지 요구하며 퇴근할 수 없도록 하는 보복성 업무 지시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보건의료노조

좌담회를 마무리하며 나 위원장은 “의사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간호사들이 불법의료에 내몰리고 있고, 환자는 속고 있다”며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보건복지부가 나서지 않으면 불법의료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복지부가 보건의료노조와의 협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어 “의료인의 양심을 가지고 환자를 속이지 않는 안전한 의료 현장을 만들자”며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전공의협의회에도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불법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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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