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소화기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환

도움말: 오상신경외과 오민철 원장

▲ 오상신경외과 오민철 원장 
#대학교 1학년 신입생 A씨는 평소 예민하고 긴장을 잘하는 성격이며, 소심하고 남들의 이목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입학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다 보니 예민함이 더 심해져서 위장장애도 함께 심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배가 더부룩하고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조금이라도 긴장하고 낯선 상황이 생기면 여지없이 화장실을 가야 하니 항상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습관도 갖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강의 중 갑자기 방귀가 나오는 일이 빈번해지며 스트레스로 인해 학교도 가기 싫어지고 우울증까지 생겼습니다. 병원에서 초음파와 내시경도 했는데 이상이 없어 답답할 뿐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유독 소화기계 질환이 많다
2017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순환기계, 신경계, 호흡기계 약물 소비량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적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화기계 약물은 다른 OECD 국가의 2배 가까이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약물은 순환기계 약물인데, 왜 한국에서는 소화기계 약물 소비량이 가장 높게 나오는 것일까요?

스트레스와 화를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남들의 이목에 너무 신경을 쓰는 한국인의 문화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거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다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분노, 짜증, 우울, 수면장애 등 신경증적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 함께 가슴이나 명치가 꽉 막힌 것 같고 답답한 증상과 함께 속 쓰림, 소화불량 같은 소화기계 증상이 흔히 나타나게 됩니다. 흔히 ‘화병’이라고 표현하는 증상과 유사한데,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위장관 증상도 이와 유사한 발병기전을 갖고 있습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소화기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환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소화기 질환의 약 30% 정도를 차지하는 매우 흔한 질환입니다. 대변을 보고 나서야 복통이 없어지는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여러 검사에도 대장 자체에는 특별한 문제는 없이 복부팽만감이 있거나 복통, 설사, 변비 등이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이렇듯 과민한 대장 증상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호발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통,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나 불안, 초조, 우울감, 수면장애 등의 과민성 신경계 증상과 동반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과민한 대장의 여러 증상들은 위장약보다는 신경안정제 복용 시 더 효과가 좋은 경우가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신경성 위장장애’ 라고도 하며, 일부에서는 소화기에 나타나는 정신적 질환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스트레스의 관계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잘못된 식생활에 의한 화학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뤄지는 말초신경계인 자율신경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통해 소화액의 분비나 위장관의 연동운동 및 소장과 대장에서의 영양소 흡수 등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자율신경계의 기능 장애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위장관의 기능조절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독자 분들 중에서도 갑자기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명치끝이 답답하면서 위가 굳어버리거나 복부 팽만감과 동반된 설사를 자주 하게 되는 상황을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겁니다.

장이 편하지 않으면 뇌도 편하지 않다
위장과 뇌는 자율신경계에 의해 기능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연결돼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생각이나 상상 등의 신경계 작용이 소화 기능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면 군침이 돌고 식욕이 당기는데요. 반면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나 불쾌한 상황을 떠올리면 속이 더부룩해지고 소화불량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율신경을 매개로 뇌와 위장은 상호 소통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신경생리학자 마이클 거숀은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장을 '제2의 뇌'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위장이 편치 않은 사람은 세로토닌 합성이 저하돼 마음도 편치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위장과 뇌는 서로 별개의 장기가 아니라는 말로, 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뇌나 신경계도 안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증상 개선을 위해서는 위장관 자체의 치료도 필요하지만 위장관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치료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율신경의 치료로 병원에서 하는 주사치료나 약물치료도 중요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자율신경의 기능장애를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찾아보고 나아가 이런 습관을 생활화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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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