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원장의 부부상담② 중년부부의 갈등..."잔소리하는 아내, 귀를 막는 남편"

도움말: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 선릉숲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대표원장 
“선생님, 제 아내는 저를 가만히 두지를 않아요. 너무 힘듭니다.”

결혼한 지 15여 년 된 이 중년부부는 매번 소통의 갈등을 느낀다. 아내는 남편과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반면 남편은 아내가 제발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아내는 남편이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이고, 반면 남편은 아내가 지난번에 했던 잔소리를 또 반복하니 짜증이 나기만 한다.


남편은 어제도 늦게 들어왔다. 거래처와 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에게 아내가 말한다. “여보, 우리 이야기 좀 해.”

남편은 심장이 철렁한다.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지금 피곤해. 우리 나중에 이야기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내의 공격이 시작된다. “어제 몇 시에 들어왔어? 대체 몇 번째야? 당신 내 이야기는 듣고 있어?” 그러자 남편은 “아 좀 그만해!” 하면서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날 두 사람의 하루는 엉망이 돼버렸다.

많은 경우 남편들은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이들을 관계에서 ‘위축자’라고 한다. 위축자들은 배우자와 큰소리로 다투는 것을 너무도 싫어한다.

반면 아내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무엇인가 바뀌지 않으면 다음에도 반복될 것이기에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투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고 이 사건을 잘 갈무리 지어 다음번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람이다. 이처럼 해결을 위해 배우자와 대화를 시도하려고 애쓰는 이를 ‘추적자’라고 부른다.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화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때때로 추적자들은 위축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무런 애를 쓰지 않는다고 오해를 한다. 하지만 위축자들 또한 추적자들만큼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전의 수차례 비슷한 상황에서 아내에게 설명을 해도 매번 싸움으로 끝이 났었고, 며칠간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게 끔찍해서 오늘도 자리를 피한 것이다.

진료실에서 이런 유형의 부부의 치료를 진행하며 흥미로운 것은, 위축자가 말이 터지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는 것이다.


추적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여태 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스스로 삭히기를 반복했다며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싸움이라고 말한다. 부부가 싸우는 게 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장 나쁜 일이기에 싸움을 피해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부부가 진료실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추적자인 아내는 이를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중년부부의 소통에 있어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배우자의 행동을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배우자가 내게 이야기를 하는데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들리도록 목소리를 점차 크게 내는 수밖에 없다.

반면 상대방 또한 원치 않는 큰 소리를 듣게 되면 귀를 더 세게 틀어막거나 멀리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결국 한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점점 큰 소리를 내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점점 커지는 목소리를 피해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서로가 서로의 행동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소리치게 만들었고, 아내가 남편의 귀를 틀어막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 놓인 부부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봐야 할까? 만약 당신이 추적자에 해당한다면, 배우자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멀리 도망치는 것임을 먼저 인정해주면 좋다. 내 이야기를 듣기 싫은 것이 아니라 싸우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우리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자.

“당신이 나랑 싸우고 싶지 않아서 피하려 했던 걸 알아. 오늘 내가 큰 소리 내지 않고 이야기할 테니 당신도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줬으면 좋겠어.”라며 부드럽게 요청을 해 보자. 남편은 깜짝 놀라 “무슨 일 있어? 왜 그래?”라며 보던 TV를 끄고 자세를 고쳐 앉을지 모른다.

반면, 당신이 위축자라면 오늘은 파트너에게 “내가 당신 이야기를 여태 너무 안 들었지?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혹시 지금 뭐가 속상한지 이야기해줄래?”라고 말해본다면 어떨까? 상대방은 “뭐야? 당신 오늘 왜 그래? 뭐 잘못했어?” 하고 무척 놀랄 것이다. 당신이 위축자의 모습을 내려놓는다면 상대방 역시 더 이상 추적자일 필요가 없다.

소중한 사람과 가까이 있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애착이다. 배우자에게 애착을 얻고자 노력하고, 위안을 받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당신만큼 배우자 또한 그러함을 기억하자. 화내는 추적자도 사랑을 받고 싶고, 도망가는 위축자도 관계를 지키고자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조금 더 너그럽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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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