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체의 등 쪽, 갈비뼈 아래 좌우에 하나씩 위치한 콩팥은 성인 주먹만한 크기에 강낭콩 모양을 띤 장기이다. 그 크기는 작으나, 콩팥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고도의 필터링 시스템이자 체내 노폐물을 걸러내는 정수 장치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체내 독소를 매일 분리 수거하여 배출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콩팥은 기능의 절반 이상이 손상되기 전까지 아무런 자각 증상을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의료계에서는 콩팥을 '침묵의 장기'라 부르며 정기적인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오는 3월 12일은 '세계 콩팥의 날'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콩팥 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질환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6년 세계신장학회와 국제신장재단연맹이 공동으로 제정한 날이다. 콩팥은 단순히 소변을 생성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거대한 화학공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혈액 속의 노폐물을 여과하여 소변으로 배출함은 물론, 체내 수분량과 나트륨, 칼륨 등의 전해질, 그리고 산염기 균형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또한 혈압 조절 호르몬을 분비하고 적혈구 생성을 도우며, 비타민 D를 활성화하여 뼈 건강을 수호하는 등 전신 건강에 깊숙이 관여한다. 따라서 콩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단순한 배설 문제를 넘어 빈혈, 골다공증, 고혈압과 같은 전신적 합병증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최근 현대인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만성콩팥병(만성신부전)은 콩팥의 손상이나 기능 저하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통계에 따르면 만성콩팥병 환자 중 본인의 질환을 사전에 인지하는 비율은 단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부종, 식욕 감퇴, 구역질, 혹은 거품 소변 등의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기능이 크게 상실되어 투석이나 이식 수술을 고려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경우가 많다. 대한신장학회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말기콩팥병의 주요 원인은 당뇨병(46%)과 고혈압(22%), 사구체신염(11%)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에는 비만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약물의 오남용, 조영제를 사용하는 검사 빈도의 증가 등이 콩팥 손상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만성콩팥병 치료의 근본적인 목적은 손상된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고 악화 속도를 늦추는 데 있다. 이와 더불어 신장 기능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빈혈이나 요독증 등의 합병증에 대한 적극적인 병행 치료가 필수적이다. 특히 질환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치 관리가 요구되는데, 그중에서도 혈압 조절이 핵심이다. 비록 자각 증상이 없더라도 수축기 혈압을 130~140mmHg 이하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질환의 악화를 유의미하게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식습관 및 생활 습관의 개선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저염식의 실천이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염분 섭취량은 15~20g에 달하는데, 콩팥 질환자는 이를 5~6g 미만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또한 근육 형성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과도한 단백질 보충제나 파우더는 저하된 콩팥 기능에 과부하를 주어 기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운동 역시 규칙적으로 시행하되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강도 높은 운동으로 인한 근육 손상은 단백질이 콩팥으로 과다하게 유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걷기나 수영, 고정식 자전거와 같이 큰 근육을 리듬감 있게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콩팥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기적인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이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고위험군 환자라면 특별한 이상 증세가 없더라도 연 1~2회 정도 사구체여과율 확인과 단백뇨 측정 등의 신장 기능 검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침묵 속에 가동되는 몸속 정수기, 콩팥을 향한 세심한 관심과 정기적인 점검만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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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