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도심 곳곳에서 '피부과' 간판을 단 병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병원의 상당수는 여드름, 아토피, 건선 등 만성 피부 질환 치료보다는 보톡스, 필러, 레이저 시술 등 미용 목적의 진료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 풍조와 맞물려 미용 의료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정작 질환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쏟아지는 '미용 특화' 피부과, 의료 전달 체계 왜곡 심화
개원가에서 미용 피부과가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시장의 논리일 수 있다. 비급여 진료 중심인 미용 시술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질환 치료보다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피부과 본연의 기능인 ‘피부 질환 치료’ 영역에 공백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피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동네 피부과에서 충분한 진료를 받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피부과에 갔더니 미용 시술 권유만 받고, 질환 치료는 대충하는 것 같았다”, “아토피 때문에 방문했는데, 레이저 상담만 받았다”는 등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질환 진료를 아예 하지 않거나, 질환 치료에 필요한 전문 장비나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도 있어 환자들의 불편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피부과 의료 전달 체계의 왜곡을 심화시킨다. 경증 질환의 경우 동네 피부과에서 해결되어야 하지만, 미용 중심의 진료 풍토로 인해 환자들이 굳이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이는 상급 병원의 진료 대기 시간을 늘리고,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인 분배를 초래하여 전체 의료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전문의 부족? 착시 효과가 만든 ‘피부과 난민’
일각에서는 피부과 전문의 수가 부족하여 질환 치료에 공백이 생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피부과학회에 따르면, 피부과 전문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절대적인 수가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전문의들이 미용 분야로 대거 유출되면서 '질환 치료를 하는 피부과 전문의'의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피부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이 개원 시 미용 진료를 주로 하는 병원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피부과 본연의 역할인 피부 질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수련은 받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미용 시술에 더 집중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피부과 간판은 많지만, 정작 자신의 질환을 제대로 치료해 줄 전문의를 찾기 어려운 '피부과 난민'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수가 현실화와 인식 개선이 절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피부 질환 진료의 수가 현실화가 시급하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피부 질환 진료의 수가는 미용 시술에 비해 현저히 낮게 책정되어 있어, 의사들이 질환 치료보다는 미용 진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피부 질환 치료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전문의들이 질환 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유인이 될 것이다.
둘째, 국민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피부과는 단순히 피부를 아름답게 가꾸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인 피부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의료기관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환자들 역시 미용 시술뿐 아니라 아토피, 건선, 습진 등 다양한 피부 질환에 대한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지하고, 필요할 경우 질환 치료 중심의 피부과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셋째, 의료기관의 자율적인 자정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의료기관은 피부 질환 치료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기본적인 질환 진료 역량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미용 의료 시장의 성장을 인정하되, 질환 치료 분야가 위축되지 않도록 적절한 유인책과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질환 진료와 미용 진료의 비중에 따른 차등 보상이나, 질환 진료에 필요한 시설 및 인력 기준 강화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건강은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피부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언제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피부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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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