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인구의 약 1%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진 말더듬(유창성 장애)은 단순한 언어 습관을 넘어, 개인의 심리적 건강과 사회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의사소통 장애다.
오랫동안 말더듬은 ‘심리적인 문제’나 ‘나쁜 버릇’으로 치부되어 왔다. 아이가 놀랐거나 부모의 과도한 훈육 때문에 생긴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신 연구들은 말더듬이 주로 언어 산출과 관련된 뇌 기능의 미묘한 차이, 즉 신경학적 운동 조절(Neuromotor Control) 문제와 관련이 깊음을 밝히고 있다.
연구 결과, 말더듬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아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또한,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언어 처리 및 운동 계획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동 패턴이나 구조에 차이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는 말더듬이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지적 능력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천천히 말해봐”, “다시 해봐”와 같은 단순한 지적이나 훈육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 압박만 가중시킬 수 있다.
말더듬이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말의 비유창성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2차적인 심리적, 사회적 합병증 때문이다.
말을 더듬을 것에 대한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은 말더듬 대상자들에게 가장 흔한 고통이다. 전화 통화, 발표, 낯선 사람과의 대화 등 말하기가 요구되는 특정 상황을 회피하는 상황 공포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지속적인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 때로는 놀림이나 차별은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며,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아울러 말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말더듬은 학업 성취와 직업 선택에 직접적인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말더듬 성인들이 말하기 요구량이 낮은 직업군으로 추천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사회적 편견의 단면을 보여준다.

말더듬 치료는 과거 ‘말더듬을 완벽하게 없애는 것’에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말더듬과 함께 편안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언어 발달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학령전기(2~5세)에는 자연 회복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 Palin 부모-아동 상호작용 치료 프로그램(PCIT)처럼 부모가 아동에게 편안하고 느린 말 환경을 제공하여 유창성을 증진시키는 근거 중심 중재법이 활용된다.
성인 말더듬 치료는 말을 부드럽게 하는 기법(유창성 형성)과 함께, 말더듬에 대한 두려움, 회피 행동, 부정적인 태도 등 심리적 요인을 다루는 상담 및 인지행동 치료가 필수적으로 병행된다. 궁극적으로는 말을 더듬어도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언어 치료 앱, 원격 진료 등이 도입되며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말더듬 당사자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회에 통합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치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성숙한 태도가 필수적이다. 말더듬을 겪는 사람이 말을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바로 ‘기다려 주는 것’이다.
말을 대신 끝내주거나, 서둘러 말하라고 재촉하지 않아야 하며, 당황한 표정을 짓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경청하는 것이 좋다. 말이 끊기더라도 내용에 집중하고,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말더듬은 치유의 대상이 아닌, 이해와 포용의 대상이다. 우리 사회가 ‘말더듬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말하기 방식’임을 인정하고, 타인의 말더듬에 귀 기울이는 공감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건강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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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아 기자 다른기사보기





